엘리베이터 문을 잠시 잡아주는 사람, 길을 묻는 낯선 이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 무거운 짐을 든 사람에게 먼저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
우리는 이런 행동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작아서 금세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분위기는 어쩌면 이런 작은 행동들에 의해 만들어지는지도 모릅니다.
사회는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공간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친절한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앞으로 다시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서로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하철에서 옆에 앉은 사람, 편의점에서 계산해 주는 사람, 건물 청소를 하는 사람, 길에서 잠시 스쳐가는 사람처럼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낯선 사람과 같은 공간을 공유합니다.
사회란 결국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대한 생활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친절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친절이라고 하면 누군가를 특별히 돕거나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필요한 친절은 훨씬 작습니다.
문을 먼저 지나갈 사람에게 잠시 기다려 주는 것, 실수한 사람에게 바로 화를 내기 전에 한 번 더 상황을 살펴보는 것, 서비스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온라인에서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모욕하지 않는 것.
이런 행동은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운동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행동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조금 덜 경계하게 됩니다.
“누군가 곤란할 때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구나.”
“실수했다고 해서 반드시 공격받는 것은 아니구나.”
그런 경험이 쌓이면 우리가 사는 공간은 조금 더 편안해집니다.
친절과 동의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친절은 상대방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부당한 요구를 참고 받아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필요할 때는 거절할 수 있고, 잘못된 행동에는 분명하게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도 상대방을 한 사람으로 존중할 수는 있습니다.
“당신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라는 말과
“당신 같은 사람은 상대할 가치도 없습니다.”
라는 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도 최소한의 존중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일 것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사회의 온도
우리는 종종 사회가 너무 차가워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회’라는 것은 어딘가에 따로 존재하는 거대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 내가 운전하면서 다른 차에게 양보했는지,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투를 사용했는지, 실수한 사람에게 얼마나 빨리 화를 냈는지,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어떤 문장을 남겼는지.
그런 작은 장면들이 모여 우리가 말하는 사회가 됩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친절은 예상보다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힘든 하루에 아무 이유 없이 건네받은 작은 배려 하나가 그날 전체의 인상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래서 친절은 단순한 예절을 넘어선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사회의 모습을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보여줄 수 있을까?
우리가 모든 사람을 좋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 덜 위협적인 사람이 될 수는 있습니다.
어쩌면 더불어 사는 사회는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처음 만나는 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